월요일 야유회

 출근할 때 딱히 듣고 싶은 음악이 없으면 CBS라디오를 듣는다. (원래 CBS는 다른 방송사들보다 '말'이 없어서 듣게 되었는데 지금은 너무 똑같은 '음악'에 질려있다. CBS에 음반이 꽤 있을텐데..) 그 시간에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의 멘트 내용이나 어감은 애들 학교 보내고 난 '전업주부'들과의 수다쪽에 가깝다. 아무튼..

 

 오늘 어떤 사연에서 '야유회가는데 사고없이 잘 마쳤으면 좋겠어요'라고 한다. 진행자는 월요일부터 야유회를 가다니 '회사의 배려'가 참 훌륭하다고 말한다.(사실 금요일은 야유회없어도 편안하고 토요일 야유회는 휴식이 아니라 '일'이기 때문에) 듣고 있던 나도 회사의 체육대회나 야유회가 월요일에 있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 그것은 '회사의 배려'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멘트를 받아들인다.

 

 '자본의 교묘한 차원의 노동력 재생산 시간'으로 '월요일 야유회'를 '자본의 정교한 음모'로 한마디로 오버할 필요까지야 없겠다.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이는 회사의 정책이란 현실수준에서 우리의 자발적(사실상 무의식적인) 무관심(다른 표현으로는 동의)에 의한 것이 훨씬 많다. 그 결과는 회사가 그 정책을 살짝만 넘어서도 '수혜'로써 감사하고, 자신의 의지로 그 정책을 살짝 넘어서려고 할 때 '이래도 되나'는 자기 규제에 시달리게 된다. 자기 규제는 단순히 눈치 보기 차원이 아니다. 고용 당한 사람의 지극히 無産者적인 '과잉 사용'의 불편함이다.

 

 서구로부터 시작된 경험에 의해 이미 노/자의 지난한 힘겨루기의 결과로 나름 법제화되어 있는 부분 조차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과잉으로 인식한다. 소유관계에 입각한 오너가 아직까지 크게 경영에 개입하지 않고 민주노총산하의 노조가 있는 우리 회사조차 '과잉'에 대한 자발적 인식이 지배한다. 나 같이 '칼같이' 권리를 주장하고 실행한다고 믿는 사람조차 동료들에 대한 인간적인 미안함으로 역시 '과잉인식'에 결과적으로 동참하곤 한다. 노조의 '칼 같은'은 지침으로 과연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 일차적으로 회사와 내가 맺고 있는 관계설정 속의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극히 추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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