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이자 재즈 마니아, 그리고 공산주의자인 에릭 홉스봄의 자서전을 보면 자신이 공산주의자로 살아가는 이유를 성찰한 대목이 있다. 다섯가지란다.
1933년 독일 나치와 공산주의자들(혹은 사민주의 사회주의자들)과의 대결적인 시위 국면에서 느낀 집단 황홀경,
피억압자에 대한 연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완벽하고 총체적인 지적 체계가 주는 미학적 매력,
새로운 예루살렘을 염원하던 시인 블레이크와 비슷한 약간의 소망,
속물 근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적 혐오감.
말년의 에릭 홉스봄은 공산당 없는(영국 공산당의 해체) 공산주의자로 살아가지만 전향(?)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소위 스탈린의 공포 정치가 공개되면서 소련의 제국주의적인 면과 중국의 민족주의적인 면에 대해 비판해왔던 에릭 홉스봄이 소련의 몰락이 결국 세계 피억압자들의 지지 세력이 무너진 것으로 즉 미국식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로 나아가는데 제동을 걸 세력이 사라진 것으로 슬퍼했다. 물론 여기에는 논란의 지점이 많긴 하지만. (소련은 체코침공이나 아프카니스탄과는 또 달리 자국에게 별 이익이 될 것 같지 않은 민족해방투쟁등에도 꾸준히 지원해왔다고 한다.)
반 자본주의(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개인적으로 부를 자신은 없다)에 대한 나의 신념은 에릭 홉스봄의 다섯가지 이유중에서 피억압자에 대한 연민과 속물 근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적 혐오감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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