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무정부적인 생산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평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막아내기 위한 한 방법으로 '상대적 과잉인구' 즉 요즘 말로 비정규직의 비율을 높이는 이 고전적인 '자본'의 정책적인 관점에서 보면

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들어서 조금 재미있는 일은 있다.

이전의 권력자와 그 주변 떨거지들이 추잡한 이권에 개입되더라도 대개 일반인은 '부인'으로 일관하는 결과만 잠깐 보게 되고 '그 놈이 그 놈'의 감정으로 일축해버리고 그 세밀한 '감수성'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대개 정치인들의 가치관이 이러저러할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그야말로 그 '세계'을 디테일하게 보기는 힘들었다.

요즘에 보면 그 디테일한 '감수성'을 읽게 만드는 일이 많다. 예를 들면 권력이란 헌법상의 주권자들을 대놓고 '최루액 섞인 물대포를 뿌려버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는 '우리는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수준의 표정들을 '당당하게' 짓는다. 권력이란 권력이 없는 사람앞에서 당당해야 한다는 '감수성'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 조전혁 콘서트 하겠다고 나름 '거물'정치인들이 모이는 걸 보더라도.

 

연예인의 사생활처럼 그들만의 디테일한 삶을 바라보는 대다수는 어이없기 보다 그 자리에 같이 있고 싶어한다. 요즘의 권력자는 그것을 알고 있다. 소수의 '울화통'은 즐길 뿐이다. 그러나 그 소수가 잠깐 다수가(이 다수는 예전처럼 그들이 숨어서 해먹기를 바라는 수준이다) 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렸다. 그래도 길들여진 감수성을 버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 다수가 되는지도 잘 모를지도 모르고.

 

댓글 1개:

  1. 왔다 가유. 형 글 재미있는데... 점점 다각도로 날이 서는 느낌이랄까. 크으. 평균 이윤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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