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있다면,
소설 [빵과 장미]에서 영어를 못하는 이탈리안 이민자 엄마와 동료들이 모여 파업시위에 들고 나갈 피켓 문구를 고민하고 어린 딸 로사가 대신 써주는 장면이다.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엄마는 푸치니의 오페라 같은 아름다움(장미)도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빵과 장미]는(켄로치의 동명 영화 원작이 아니다) 1912년 미국 로렌스 방직공장 파업(소위 "빵과 장미 파업")을 바탕으로 한 캐서린 패터슨의 실화 소설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100년 전의 자본주의의 (아동)노동과 자본, (공)권력의 대립은 여전하지만 많은 노동자는 절대적인 빵을 얻었고, (부르주아의) 장미는 미디어를 통해 넘쳐난다. 그리하여 로자(룩셈부르크)가 혁명의 직접적인 수단으로 인식했던 대중총파업은 (금융공황위기이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미학인 파업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한 '연대'(다른 지방 노동조합에서 이 아이들을 가정마다 맡아 파업이 끝날때까지 재우고 먹이고 학교에 보낸다)또한 뭉클하다.
(어차피 21세기 자본주의란 자본 전체를 말하는 것은 (좌파의) 사회민주주의이며, (우파는) 자본전체가 아닌 특정분야자본에 대한 특권적 이익을 위한 헌신일 뿐이므로, 특권분야의 노동계급에 대한 (물적) 설득을 통해 쉽게 와해시킬 뿐이다)
작가는 자신이 사는 노동회관에서 100년전의 이 아이들 사진을 본다. 그리고 그 역사를 추적해 나간다.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작가 아니던가. homeless 제이크(또다른 주인공 남자 아이)와 이탈리안 이민 사회주의자 老석공이 돌에 새긴 '장미'를 통해 제이크가 home에 안착하는 라스트는 교감의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슬프게도 그것이 '우연적인 행운'일 뿐임을 보여준다.
로사의 엄마처럼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은 노동 계급의 본성과도 같은 것인데, 그를 바라보는 어린 로사가 부르주아의 '착함'으로 무장한 담임 선생과의 관계에서 고민하는 계급적 흔들림은 결국 그도 그 착함에 투항한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은 현실을 의미한다.
총파업의 선두에서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부르는 로사의 엄마는 엄마가 잡혀갈 것을 두려워하는 로사에게 말한다.(마르크스의 아주 오래된 경구는 홉스봄의 말처럼 (제한적인 시점의 의미에서) 역사를 이해하는 최고의 통찰이다)
"2만명을 한꺼번에 감옥에 가둘수는 없다. 그런 곳이 있다면 그곳은 공장이다. 우리는 이미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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