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뿐만 아니라) 국가 대항전의 전 지구적인 내셔널리즘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항전은 거기에다 총동원체제의 儀式적인 전통(?)까지도 여전히 잘 이어받고 있다.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연예인들과 국민들은 ~기원 행사에 동원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고질적인 (비전문)행정가들의 학맥,인맥,정맥에 따른 위계적인 조직의 피해는
여전하다. (물론 그와 대립각을 세우는 코치나 해설자들이 나름 자리를 잡아가기는 하는 것 같다)
조광래 감독에게 '전설'이 하나 있다. 당시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선수 중 유일하게 미분과 적분을 풀 수 있는 머리 좋은 선수였다는 것인데(그에 걸맞게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의 머리좋음과는 별개로 우리의 엘리트 체육 현실은 여전히 그때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슬픈 현실이다.
박지성을 비판하는 자, 거의 사형이다. 우리의 복잡한 민족주의, 인종주의, 오리엔탈리즘, 小제국주의등등을 최전선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사람들이 박지성부류의 사람들이다. 박지성의 경우 유럽인의 시각으로 우리의 비합리성을 종종 불편해하곤 하는데, 그가 말하는 불편함은 남미나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마치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듯한 태도는 그의 무식함과 함께 그 무례한 맨유선수의 시각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런 말은 거의 아무도 하지 않는다. 맨유의 1.5주전보다 훨씬 월등한 실력과 성과를 보여준 차범근이 왕따라는 현실이 묘하다. (차범근 해설과 신문선 해설을 비교하면서 이란전을 봤는데 경기에 대한 이해도와 해법은 역시 현장에 오래 있었던 차범근이 더 나은 것 같다)
이런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립서비스 일수도 있으나 승패보다 경기를 지배하는 것을 중요시 하고 선수들이 경기를 즐기는 것을 공공연히 주문하는국가 대표팀 감독이 생겨 났고(이것을 한국 축구의 세계화로 표현하는 언론은 좀 다른 관점을 봤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허정무의 철학없는 무지해 보이는 축구를 매우 싫어한다) 그에 따라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신선하게 변화하고 있는 선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들의
가슴에는 여전히 전투에 나선 전사의 정신력이 강조되지만 이 정도라도 오기까지 엄청난 세월이
흐른 것 같다. 명성뿐인 이청룡의 소극적인 플레이(영국클럽팀에서도 그런것 같다)보다 독일 시절의
오웬 하그리브스(그의 부상이 안타깝다)같은 창조성과 지치지 않는 성실성이 결합된 이용래가 훨씬
더 큰 스포트 라이트를 받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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