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국사(國史)교육이 근대 국민국가의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에 복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지만 21세기에 이르러까지 비정상적인 '식민지의 국가주의(식민사관)'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일제강점기의 '근대'에 대한 내면화가 정교하다고도 할 수 있겠고, 그 후예들이 이끌던 독재가 재갈을 물린 것도 있겠지만, 주체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일차적으로 역사학자라 칭하는 자들의 성찰 없음과 무지 혹은 왜곡에서 비롯된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편집자들과 같은 기본적으로 현실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계신 뉴라이트계열에는 이런 비판을 적용하지 않겠다)
이덕일..
유사역사학자(사이비역사학자)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최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류의 다분히 선정적인 제목하에 '민족(지상)적인' 웅지와 설레임으로 식민사관과 그의 전통적 뿌리인 노론 주류 사관(사실은 이병도겠지만)을 극복하겠단다. 상황은 뻔하다. 역사에 관심 꽤나 있다는 나 같은 사람도 1차 사료에 대한 해석 능력이 전혀 없고 의지도 아예 없으므로 이덕일의 '고조선 영토'(고조선이 대륙의 지배자라는 호기로운 대륙의 논리도 따지고 보면 일제의 만선사관의 방법적 변형일 뿐이다. 대륙을 지배했으니 자랑스러운 한국사라는 것인가. 한반도 남단의 제주도에서도 끊임없는 민중들의 삶의 역사가 있었다), '고구려 기상'의 수식어는 '대~한민국'에서 힘깨나 쓸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민사관 극복의 대척점이 신채호 선생의 '아와 비아의 투쟁'(고등학교시절 상당히 매료되었던 표현)의 민족주의 강화에 있지 않음을 그 배타성에 있지 않음을 냉정한 역사가는 이해해야 할텐데 그는 역시 대중의 환호에 응대해주는 포퓰리즘의 단맛에 빠져있는 듯 하다. 한겨레 신문이 날개까지 달아줬으니 대중적 인기가 '새로운 역사서술'로 평가받기까지 한다. 식민사관과 주류사관 극복의 메시지에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덕일이 과연 민족적인 '욱'하는 감정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오늘날의 민족국가가 아니었던 고구려에 대한 배타적인 점유를 중국이나 한국이나 주장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우리 역사'가 열린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학문을 한다는 역사가라면. 동북공정과 그 대응에서 보듯이 결국 민족주의 팽창은 부딪치고 말 것이다.(현실적으로 이명박이 노리듯 북의 자연소멸을 통한 흡수 가능성보다 중국의 한 성으로 북이 흡수될 가능성이 더 높다. 민족이라..)
이덕일은 '역사'와 '오늘', 그리고 '양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중들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1차 사료에 대한 왜곡과 무지를 일삼으면 안 된다. 그것은 폭력적인 권력과 다를 바 없다. 이미 호기로운 아이디어로 대중을 사로잡고 난 다음 아니면 말고식의 권력. 위의 책의 핵심 주제인 한사군 관련해서 중국의 지도책에서부터 사마천의 史記, 이병도의 책등에 대한 인용조차 교묘하게 왜곡하거나 첨삭해버리는 비양심을 보인다. 비양심을 통한 주장의 감정적인 정당성(?)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비양심을 절대 해명하지 않는다. 노론 사관을 비판하겠다는 '이이의 십만양병설 조작설'이 어떻게 한국사 그들이 숨긴 '4대'(!) 왜곡에 포함되는 엄청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오항녕의 사료 검토를 통해 이덕일의 사료에 대한 성의 없음과 무지(아니면 고의)로 드러났다. 그리고 반론 또한 사료에 대한 해명을 철저하게 하지 않고 다른 사료를 들이댄다. 그 사료 또한 잘못된 증거로 판명났다. 그 다음은? 역시 예상대로 '큰 틀에서 맥락을 보라'는 수준으로 변화한다. 이후로 이덕일은 강력하게 해명하지 않는다.
역사가의 주관적인 해석에 불만은 없으나 자의적인 해석과 불충분한 사료 검토와 무지는 쪽팔리는 짓이다. '개혁 군주 정조는 수구세력에 의해 암살되었다!' 얼마나 매력적인 제안인가. 그러나 역사가가 거기에 빠지면 '천안함은 북한의 소행이다'고 전제한 뒤 증거를 찾아나서는 패착과 다를 바 없다. 식민 사관의 극복이 말이나 주장처럼 '임나일본부'의 부정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식민사관이 한국사에 드리운 근대주의의 허상과 내면화까지 파헤쳐져야 극복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식민사관'의 소재들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역사를 생각하고 우리의 오늘을 바라보고 고쳐나가는 방식에 대한 문제 아니던가.
(그리고 제발 뭔가를 발표할 때 최소한 자신의 자료에 대해 요모조모 다 따져봐라. 맑스가 자본론을 계속 출판사의 일정대로 출간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글에 자신이 없어서다. 계속해서 그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읽고 또 읽고 수정하고 한다. 결국 완성하지 못한다. 이 정도의 노이로제 수준의 완벽함을 요구하지도 않는 풍토이건만.)
박준성..
한국 좌파가 무식하다는 좌파 내의 주장에 대해 피부에 와닿을 만큼 좌파의 머시기가 있는 나라도 아니지만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같은 책을 대할 때면 그 의미를 지엽적이나마 이해하겠다. 성찰과 연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 중심의 역사'라는 참명제를 앞에 두고 90년대 초반 새내기들에게 하던 2학년들의 교양 세미나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의 노동운동에 대해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고 존경한다. 그리고 병마와의 투쟁에 승리하기 바란다) 거북선을 정말 이순신이 만들었나? 망치두드리고 못 박던 민중들이 만든 것 아닌가? 이런 류의 담론 때문에 좌파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하여 결국 동학농민전쟁 당시의 동시대 세명의 인물인 김개남, 황현, 이기를 논하면서 한마디로 말하면 민중들의 반봉건/반침략 투쟁(사실 반봉건에 대한 부분은 80년대 달아올랐던 민중사학의 관점으로부터 제기된 것이지만 현재 많은 부분 수정되고 있다. 농민군이 내세웠던 것이 왕조를 뒤엎는 반봉건의 슬로건은 아니었다. 물론 슬로건만으로 피지배층의 조직된 저항을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을 이끌었던 김개남은 '좋은 사람'이고 한일병합당시 자결한 매천 황현은 동학농민들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한 '반동'인데 '자결'로 인해 우국지사으로 떠받들 이유가 없는 '나쁜 사람'이다. 이기는 왕권의 개혁을 위해 동학농민의 협조를 받으려했으나 농민군(김개남)이 쫓아버려 이후에 농민군에 반대하게 되므로 역시 '나쁜 사람'이며 동시대를 살았던 세 사람이 이렇게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절대 비판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안중근 역시 동학진압군에서 싸웠으며 그가 주창했다는 동양평화론 역시 인종주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이고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 역시 동양의 평화적인 연대를 깨뜨린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해하게 되면 문제는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런 논리로는 조선 시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황현과 이기의 유학자로서의 저력을 단칼에 베어버리게 된다. 유교적 양반의 삶을 '유교'라는 전근대성과 '양반'이라는 계급으로만 이해할 경우 책상머리에서 공론하는 조선시대 유림의 이미지 즉 식민사관이 그렇게 노래하는 그 이미지에 기댈 뿐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국민으로 조선시대 인민을 이해하게 되면 단 한 명의 왕과 신하도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 모든 민란을 본질적으로는 진압하라는 사람들이 아닌가. 오히려 민란의 성격 즉 어떤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살만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상황에서 들고 일어나는지를 세밀하게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란을 다 진압한 사람들이 툇마루에 앉아 유가의 사상만 늘어놓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반동성'은 결국 식민사관의 반대편을 돌아 같은 지점에 도착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역사가 관점의 학문이라고 해서 니편 내편식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오항녕..
식민주의와 근대주의가 우리 역사 인식에 같은 맥락의 저해 요소라는 점을 분명히 전제하고 있다. 식민주의 극복을 위한 선악 구조와 근대주의의 자본주의적 진보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문제설정하면서 조선시대 문명의 저력에 대해 분석한다. 조선 성리학이 만만치 않은 이상사회(사회통치)에 대한 논쟁이고 조선은 문치주의의 저력을 가진 국가임을 강변한다. 식민사관과 근대주의의 관계에 대한 설정은 타당하다고 본다. 백년이 넘게 대동법(사실 엄청난 조세개혁아닌가)을 시행했고 수정해 왔던 김육 이하 인민을 위한 관리들과 지금의 '인간 본질을 생각하게 만드는' 정치인 및 관료들과 비교하면 근대의 기술주의에 묶여 '진보'를 설명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조공-책봉등의 동아시아 관계를 사대-사소등의 논리로 묘한 '평화적 시공간'으로 동시대적으로 치환하는데는 문제가 있다. 조공-책봉관계가 단순히 식민사관의 논점인 '사대주의'와 다른 것임은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조공-책봉의 신봉(사실상 비자주적인 면이 있다)으로 인해 조선 후기 청의 몰락과 함께 조선의 자주성 또한 동시에 몰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조선 내부의 다른요인들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재진의 경우처럼 대한제국의 '홍길동'들의 광무개혁을 자주적인 세력의 개혁으로 평가하는 것 또한 자기 만족에 불과하다. '자주'라는 개념이 단순히 외세배격이라고만 한다면 누군들 외치지 않았겠는가. 아무튼 500년간 지속된 조선 왕조의 저력이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라는 사회적 합의(?)까지 오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무엇인가를 유림들의 철학으로 이해하기에는 또 뭔가 부족하다.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교훈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라고 멋있게 말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본질로 보이게 하는 관계들'에 대한 탐구 아닐까. 식민사관 혹은 근대주의의 극복이란 '친일파 와 민족해방운동진영, 그리고 언놈이던 상관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민중들을 이합집산하게 만든 열강과 일제들로부터 비롯된 그 관계들'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쟁기갈던 농민들보다 트랙터 모는 현재의 농민들의 모습이 더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따위의 초현실적인 질문같은 것은 던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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