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갑자기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재활용 박스(택배박스)를 정해진 날짜가 아닌데 몰래 버려놓았느냐는 경비 아저씨의 흥분(?)된 목소리였다.
아내가 택배를 받은 적도 없고, 더더욱 버린 적도 없다며 쏜살같이 내려갔다.
한 동안이 지나도 올라오지 않기에 내려가 보니, 정말 우리 동호수가 적혀 있는 택배박스가 버려져 있었다. 평소, 건강보조음료등이 생기면 곧잘 경비 아저씨에게 갖다주곤하던 아내가 억울해 하며 아저씨와 언성을 높인 모양이다.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과민반응으로 억울하면 관리실에 연락해서 자신을 자르라고 했단다. 아저씨의 과민반응은 아내의 해명을 전혀 듣지 않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시달림에 대한 지레짐작의 자기방어 혹은 스트레스 해소같은 것으로 보였다.
아저씨를 진정시키고 우리집 물건이 아니며 이 '염치없는' 사람을 찾아 알려주겠다고 했다. 우리 모두 피해자 아니나며. 가만히 생각하니 사소하다면 사소하달수도 있겠지만 어떤 의미로는 우리집의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는 큰 일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신들의 택배 택은 다 떼버리고 남의 동호수(택배 배달원이 부재중 경비실에 맡길 때 써 놓는 것)는 지우지도 않고 버렸다는 것은 귀찮음도 있었겠지만 우리집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절대 자신이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는 얌체같은 믿음 아니었겠는가.
조사에 착수했다.
물건을 보낸 웹사이트야 개인정보보호로 절대 구매 내역을 알려주지 않을테고(더구나 토요일이었고), 택배 박스에는 택배회사를 유추할 수 있는 로고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신석관'이라고 적혀있는 택배 집하장임직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위쪽 반이 떨어져 나간 바코드가 있었다. 검색으로 신석관 택배를 조회하니 CJ택배임을 짐작할 수 있는 글들이 있었다. 내친 김에 CJ택배조회검색으로 들어갔다. 송장번호 12자리를 입력하란다. 바코드 밑에 있는 숫자를 가만히 보니까 12자리였다. 속는셈치고 입력하고 엔터, 결과가 주르르 나왔다. '***'이란 여자(?)가 수신인 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동에서 '***'이란 사람만 찾으면 되었다. 경비실에 가서 침착해진 아저씨와 차량등록대장을 조회했으나 이름이 없었다. 동대표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개인정보보호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관리실의 전산으로 조회를 부탁했으나 오늘 그런 이름이 없다고 연락받았다. 이 과정에서 동대표의 말은 어이 없었다. 자신이 경비실에 가보니 박스가 소포만한 조그만 것인데(아이들 칫솔 홀더 두개였다) 다른 사람 피해줄 정도도 아니고 쓰레기 수거장 옆 계단에 얌전히 버려놓은 것을 왜 조용히 처리하지 않고 상황을 시끄럽게 했느냐고 경비 아저씨에게 야단을 쳤단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항상 그렇듯이 경비 아저씨는 막 대해도 되는 존재였다. 나는 동대표에게 경비아저씨가 평소 예의라고는 조금도 없는 아주머니들한테 당하는 비인간적인 스트레스를 아느냐고 말했다. 원칙대로 일을 한 경비 아저씨를 무슨 권리도 '야단치느냐고(이 표현도 어이없었다) 싫은 소리를 했다. 또 그렇게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도 아닌 조그만 박스크기라면 오히려 자신의 집에 보관해야지 이게 더 얄미운 짓 아니냐고 화를 냈다. 동대표는 이제 알아서 하란다.
그 집하장에 전화를 걸어 조회를 부탁했다. 엇?? '***'이란 사람은 거의 우리구의 반대편에 멀리 떨어진 아파트(동호수는 우리집과 같았다)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택배회사가 그 사람과 통화해 보니 물건을 받았다고 한단다. 우리가 본 물건과는 다른 물건이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송장번호로 조회했을 때 같은 날 물건을 두 번 받은 걸로 되어 있었다. CJ택배본사 콜센터로 전화를 했다.(그 집하장에는 한건으로 조회된다며 자신들 물건은 잘 전달 되었다며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본사로 전화를 하란다) 대 여섯번 전화를 했으나 상담원과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갈까 생각하다 경비 아저씨가 우리집에 연락하지 않고 스스로 처리했을 경우 그가 우리집을 바라보았을 경멸의 시선을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몰래 버리는 것도 얌체 같지만 최소한 남의 집 주소는 지우고 버리더라도 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남은 것은 물건을 보낸 웹사이트 밖에 없었다. 그 웹사이트의 아이디를 가진 '***'이란 사람이 자신이 주문하면서 선물이나 혹은 부탁을 받아 우리 아파트에 사는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추가주문으로 보내준 것 아니겠는가. 그것 말고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었다.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개인정보는 필요없고 그 송장번호에 우리 아파트 주소가 있는지 물었다. 있다고 했다. 찾았다. 오늘 저녁 퇴근하면서 올라가 볼 생각이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러나 더 열받게 하는 것은 동대표의 경비 아저씨에 대한 태도이다. 자신이 부담하는 만원 남짓의 관리비를 근거로(물론 그 근거를 가진 많은 사람들의 대표라는 '사용자'의 허위의식으로) 경비아저씨의 인격자체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천박한 생각. 몽둥이를 날리고 매값을 지불했다는 그 재벌의 '정신병'과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남의 집에 누명을 씌운 것에 대해 고의가 아닌 사소한 것 아니냐는 그 놈의 좋은게 좋은것 아니냐는 허접한 이기심. 그 좋은게 좋은것에 경비아저씨는 왜 항상 해당되지 않는가.
늘 하는 생각이지만, 세상살이가 결국 자성(自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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