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출근길 편의점 모퉁이에 과일 행상 리어카가 있다. 계절마다 제철 과일을 두 세가지씩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 주인은 리어카 한켠 낚시 의자에 앉아서 마냥 손님을 기다린다. 주인은 사십대 후반에서 오십대 초반의 까만 피부를 한 아저씨로 자그마한 체구가 행상이라는 이미지와 어울려 초라해 보인다. 가끔 술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오후쯤에는 졸기도 한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리어카에 과일의 가격표시를 위해 꽂아 놓은 박스 쪼가리다. 상품 박스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뒷면에 '귤 한 바구니 2,000원' 따위를 적어놓는다. 지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른 리어카 행상들과는 달리 매우 정성들인 흔적과 그 때문인지 글씨체가 너무 예쁘다는 것. 그리고 전체적인 구도가 삼각법의 원칙을 잘 지키며 안정적이다. 그러고 보니 낚시 의자에 앉아서 아저씨는 매일 뭔가를 쓰고 있었는데 그것이 저 박스 메뉴판이었던 모양이다. 또 하나는 그 박스 메뉴판의 글씨체와 디자인이 정기적으로 조금씩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걸어오는 길에 아저씨는 쭈그리고 앉아 박스에 매직으로 뭔가를 정성들여 쓰고 있었다. 리어카 위에 이미 만들어 놓은 가격표를 보니 오늘은 글씨의 테두리를 빨간 매직으로 입체감있게 꾸몄다. 그렇다고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세상에 이런일이'나 '생활의 달인'류의 프로그램에서는 전근대적인 생활 방식과 근대적인 이미지의 불일치로 하루쯤 호들갑을 떨 수도 있겠지만, 아저씨의 삶이 나아질리는 없고 나 또한 가격표 디자인만 단순히 즐길 뿐 과일 한 바구니 사준 적 없고, 앞으로도 별로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냥 날씨가 춥지나 않았으면, 수준의 프롤레타리아트간의 약간의 공감 정도.

댓글 없음:

댓글 쓰기